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천 마리 학(千羽鶴)』연구

Abstract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문학의 주제는 일반적으로 사생관, 여성관, 에로티시즘, 미의식, 마계론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그의 작품 속에는 고독감과 죽음의 공포가 저변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가와바타의 사생관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필수요건이라고 생각한다. 가와바타는 죽음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진지하게 모색한 작가이다. 『천 마리 학(千羽鶴)』은 패전이후에, 일본인의 허탈감과 정체성 상실을 투영한 작품이다. 패전이후에 일본의 타락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마계사상'이다. 『천 마리 학(千羽鶴)』은 차(茶)의 세계를 배경으로 나타난 죽음과 마계와 정화의 프로세스를 통해 인간의 실존을 드러내고 있다. 마계사상이란 죽음을 통해 마계에 진입하고 마계를 탈출함으로써 불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으로써 잇큐선사의 '마계이입불계난입(魔界易入佛界難入)'이라는 여덟 문자로부터 나왔다. 죽음과 삶이 공존한다는 가와바타 특유의 죽음의 초월의식이다. 작품에 나타나는 다기는 죽음의 은유이며 다회는 마계진입의 도화선으로 파악했다. 차(茶)의 세계를 구성하는 차 도구인 다기는 망자들의 혼이 깃들어 있다. 망자의 영혼이 다기를 접하는 인물들에게 빙의된다. 다회에서 다기를 접한 인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로 추한 마계로 빠져들게 된다. 마계의 양상은 가슴에 검붉은 반점을 가진 치카코의 '질투와 모략의 세계', 그리고 주인공 기쿠지(菊治)가 아버지 미타니(三谷)의 연인이었던 오타(太田)부인과 그녀의 딸인 후미코(文子)와 맺은 이중의 유사근친상간적인 '패덕과 패륜의 세계'로 파악했다. 이 마계의 추악함을 정화시켜 주는 것이 바로 여성들의 희생과 일본의 전통적 고전미로 그려지고 있다. 작가 가와바타는 이러한 일본의 고전미를 사용한 뛰어난 문장력으로 작품의 퇴폐함을 상쇄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의한 정화는 여성의 죽음과 순결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일본의 고전미에 의한 정화는 '원망(願望)과 치유'를 의미하는 하얀 '천 마리 학'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일본의 고전미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정화장치는 바로 예술품이다. 예술품에 의한 정화는, 명품이 지닌 항구성과 심미성에 의거한다고 생각된다. 작품은 단순히 마계만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그곳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제시함으로써 상실감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천 마리 학』은 그 희망의 빛을 일본인이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전통적 미의식으로 승화시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천 마리 학』에 나타난 '죽음과 마계와 정화의 프로세스'를 살펴봄으로써 죽음과 마계와 정화가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가와바타 특유의 죽음에 대한 초월의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