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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제주지역 목축의례의 역사민속학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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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rnative Title
Historical Folklore Studies of Cattle Breeding Ceremonies in the Postmodern Era in Jeju Area
Abstract
이 글은 제주 지역의 목축의례에 관한 연구로서, 역사적으로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 지방 관아에서 주관하였던 목축의례들의 종류와 내용에 대해 역사민속학적인 관점에서 정리하였다.
첫째, 제주 관아에서 주관하였던 목축의례에는 마조제·마제·공마해신제가 있었고, 민간에서 행해지고 있는 목축의례에는 낙인코시·귀표코시·밧·리는 코시·윤남동산당의례·백중의례·백중마불림의례 등이 있었다.
관아에서 주관 하였던 의례 중 마조제는 한양과 제주에만 마조단을 두어 치제하였던 국가의례였다. 제주지방의 마조제를 『국조오례의』와 『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알아 본 결과, 마조제는 사복시에서 주관 하면서 의례의 형식에 있어서는 무당과 기생들이 모여 가무를 하며 즐기는 잔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제주는 조선 후기에 마조단이 설치된 것으로 기록에는 나타나는데, 이는 무속식 마조제에서 유교식 마조제로 바뀌어 치제되기 시작한 시기를 알리는 것으로 본다.
제주의 마조단이 설치된 곳은 '광양'이다. 한양의 경우 고려시대 제단을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용하였으므로 제주에서도 이미 설치되어 있던 제단에서 마조제를 지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고려시대 마조단에 대해서는 의귀리의 '무너진 연디'라는 주장이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마제'는 국가의례로서 임금의 강무 전 또는 지방 수령의 수렵 전에 지내는 제사이다. 제주목사의 가을 순력에는 수렵이 행해지고 있었고 이 때 마제가 치제 되었을 것이다. 마제가 군사와 관련된 의례이지만 『국조오례의』에는 선목·마사·마보의 예에 따라 치제하도록 하고 있음으로 이는 말(馬)과 관련된 의례로 볼 수 있다.
'공마해신제'는 진상하는 말을 실은 배가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기를 해신에게 비는 제사이다. 국가의례로서 해신에 대한 제사는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바다의 용에게 지내는 제사였지만 제주에서의 해신에 대한 제사는 바람을 다스려 항해를 무사히 하고자 하여 행해졌던 의례이다.
둘째, 민간의 목축의례 중 낙인코시에서는 낙인의 유래와 낙인글자 및 그 속에 담긴 의미 등에 대해서 알아 본 결과, 제주에서 낙인이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 몽골이 탐라목장의 말에 낙인을 시작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관우마(官牛馬)에 낙인을 하여 관리하였다. 조선시대 관우마에는 천자문의 70자 이내의 글자를 사용하였다. 관우마 외에 사우마에도 낙인을 하도록 하였는데, 사우마의 경우는 천자문의 70자 이외의 글자들을 사용케 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사우마에도 천자문의 70자 내의 글자들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민간에서 사용하는 낙인들은 대부분 간단한 글자나 독특한 모양의 기호들이 사용되었다.
낙인을 하기 전에 낙인코시를 했는데, 제상에는 말을 걸 밧줄과 그 날 사용할 낙인을 함께 올려 지낸다. 낙인코시의 상차림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처음으로 그림 자료를 제시하였다.
귀표코시는 귀표를 하기 전에 지내는 제사로, 개인에 따라서는 낙인코시와 겸하기도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마의 귀표 모양에 대해 처음으로 그림 자료를 제시하였고, 귀표코시의 상차림도 처음으로 그림 자료로 제시 하였다.
'밧·리는 코시'는 밭에 씨앗을 뿌린 후 우마를 이용해 그 표면을 밟게 할 때 지내는 제사이다. 밧·리기는 제주만의 독특한 농법으로, ··왕조실록··에는 태종시기부터 관련 기록들이 나타나고 있어 고려시대부터 이미 행해지던 오래된 농법이라 할 수 있다. 제사의 의미를 파악해 본 결과 여름철 밭을 밟게 하는 것은 말에게는 힘든 노동이므로 미리 제사를 지내어 우마의 사고를 막고자 하였다. 그러나 의례에서는 우마를 위하지 않고 테우리를 위하는 제사로 지내지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우마를 돌보는 테우리를 위해 주어서 우마를 잘 보호하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윤남동산당'은 우마를 잃어버렸을 때 찾아가서 비는 신앙처이다. 현지 조사 결과 이 당을 찾아 빌 때는 다음의 세 경우였다. 첫째는 방목하는 우마를 임시 찾아와 이용하려고 할 때, 둘째는 방목하는 우마가 방목지 범위를 벗어나 잃어버렸을 경우, 셋째는 백중제를 지내러 가기 전에 먼저 의례를 지내고 있었는데 상황에 따라 의례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먼저 우마를 임시 이용하고자 할 때의 당의례는, 쌀밥에 생선을 굽고 돈과 술을 제물로 준비하고 당에 올려 절을 한 후 그 음식을 방목지로 갖고 가서 점심으로 먹으면서 자신의 우마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우마를 분실하였을 경우에는 의례를 행한 후 100보 밖으로 가서 누워 까마귀를 기다렸다가 까마귀를 따라가서 우마를 찾는다. 위의 경우와는 달리 백중날의 의례는 백중제물을 따로 조금씩 준비하여 목장으로 가기 전에 먼저 당의례를 지낸다. 윤남동산당에서의 의례에 대해서는 현지 자료 수집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다.
'백중의례'는 제주의 대표적인 목축의례다. 우리나라의 백중제가 농경신에 대한 의례라면 제주의 백중제는 목축신에게 지내는 의례로 행해진다.
백중 전설의 내용으로 볼 때 백중제는 백중을 위한 제사라고 할 수 있으나 백중제의 '말명'과 '비념' 속에 등장하는 신을 분석한 결과 백중제는 과거 산천신에게 드리던 제사임을 알 수 있었다.
'백중마불림제'는 백중시기 마을의 당에서 지내는 의례이다. 마불림의례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국가의례인 '기청제(祈請祭)'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기청제와 비교하였다.
세경본풀이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칠월마불림제가 하세경인 정수남을 위한 의례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주에서의 목축은 농경보다 더 중요시 되었으며, 농경보다는 목축에서 사고의 위험이 더 컸기 때문에 목축신을 위한 의례를 중시하여 우마의 무사를 기원하고자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송당본향당에서 산신놀이를 하는 것으로 보아 과거 칠월 마불림제는 목축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례로서 행해졌던 의례임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제주 지역 목축의례의 특징을 역사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관아에서 주관하던 목축의례들은 고려시대 무당에 의해 치제되었던 무속식 의례들이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으며, 무속식 의례가 유교식 의례로 바뀐 시기는 공마 해신제는 해신사가 설립된 1820년, 마조제는 마조단이 설립된 1852년 이후이다. 조선 시대 음사에 대한 논란이 많았지만 관아에서는 이들 의례에 대해서 협조하거나 또는 방조하는 등의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주에서는 19세기까지도 무속식 의례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넷째, 민간의 목축의례들은 방목과 연관성이 많았다. 연중 우마를 방목하기 때문에 우마에 닥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천상신과 산천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목축의례의 신은 하늘의 '옥황 테우리'인 천상신에서부터 산천의 신인 '지황 테우리'와 인간 세상의 '인황 테우리'가 모두 목축에 도움을 주는 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상의 연구 결과로 볼 때 제주의 목축의례는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무속식 의례로 치제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목축의례들은 고려시대의 치제 방식이 지속적으로 지켜졌으며, 민속적으로는 고려시대 천상·산천·우마에 대해 치제하였던 의례들이 조선시대 음사 규정에 의해 금지되면서 백중전설을 등장시켰을 것으로 본다.
문화에 있어서는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제주의 향토문화야말로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혜로 형성된 문화이다. 제주의 목축문화는 척박하고 험한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물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어지길 바란다.
이 글은 사료의 한계로 인해 현장조사에 지나치게 의존한 바가 없지 않지만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양한 고문서 자료의 발굴을 통해 내용이 더욱 보완되었으면 한다.
This is the research regarding cattle breeding ceremonies of types and details in Jeju area in the Joseon Dynasty Periods.
Jeju was established stock farms by Mongolia when the Koryo Dynasty Periods Chung-Ryul king was second year(1276). And then, in Joseon periods, those were getting more important as national farms. Therefore, there are performed variety ceremonies for oxen and horses in Jeju.
Cattle breeding ceremonies of Jeju are separated to manage by government ritual and private. First, there were existed MAJOJE, MAJE and GONGMA-HAESINJE superintended by Jeju government. First of all MAJOJE is a kind of rituals for prayed to horse god and MAJE is a ceremony for winning of war or hunting. Lastly, GONGMA-HAESINJE is a ceremony for safe voyage that was used to offer horses from Jeju to central government.
Private Managers who care oxen and horses had to conduct more than government officers since there were the intimate relations between private ceremonies and the ways of ranching. Namely, farming method was closed with putting the cattle out to pasture. For that reason there were a lot of ceremonies for prevention of pasturage accidents.
Private cattle breeding ceremonies had different types such as NAKINCOSHE, GUIPYOCOSHE, BATBALLINEUNCOSHE, DANGEURYEO, BACJOONGEURYEO, BACJOONGMABULIMEURYO so on.
NAKIN is a brand which means buttocks of oxen and horses were stamped by hot metal and GUIPYO is a sign that cut a part of oxen and horses ear. BATBALLINEUNCOSHE is a ceremony between sowing seeds and stepping of oxen and horses also DANGEURYEO is a ceremony for pray to god to find lost oxen and horses. BACJOONGEURYEO is a ritual in a cattle farm with oxen and horses at midnight on July 14 together with BACJOONGMABULIMEURYO is a ritual in a center of village which called DANG by shaman. These ceremonies had prayed for unharmed and prosperous of oxen and horses.
Cattle breeding ceremonies of Jeju are formed by shamanism. Ceremonies managed by government were also conducted by shaman and private ceremonies conducted by individual but this form was also shamanism.
Traditionally, people minded the god from sky, mountainsand also water. In the Koryo Dynasty Periods, it was common to pray to sky, mountains and water god. However, in joseon periods, it was prohibited because people thought that only emperors and kings have authorities to pray to god as sky, mountain and water.
For that reason, Jeju private ceremonies have been changed to individual ceremonies. In addition those were changed having a ceremony covertly during night
It got the points of cattle breeding ceremonies historically and traditionally so far. It has limited for research from government examples since there was not enough evidences. Moreover, in private cases, there was not sufficient precedent researching. On this account it had to research depends on field survey instead of disappeared examples. Finally, it needs to dig out hidden literature evidences and broad field survey in the future.
Author(s)
좌동렬
Issued Date
2010
Awarded Date
2010. 2
Type
Dissertation
URI
http://dcoll.jejunu.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4915
Alternative Author(s)
Jwa, Dong Yeol
Affiliation
제주대학교 대학원
Department
대학원 사학과
Advisor
김동전
Table Of Contents
Ⅰ. 머리말 1
Ⅱ. 지방관아의 목축의례 종류와 내용 5
1. 마조제(馬祖祭) 6
2. 마제(禡祭) 12
3. 공마해신제(貢馬海神祭) 13
Ⅲ. 민간의 목축의례 종류와 내용 19
1. 낙인코시 20
2. 귀표코시 31
3. 밧리는 코시 34
4. 당(堂)의례 37
5. 백중의례 39
6. 백중 마불림의례 52
Ⅳ. 목축의례의 종합적 성격 58
1. 역사적 성격 58
2. 민속적 성격 60
Ⅴ. 맺음말 64
참고문헌 69
Degree
Master
Publisher
제주대학교 대학원
Citation
좌동렬. (2010). 전근대 제주지역 목축의례의 역사민속학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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