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 Repository

조선후기 제주지역 지방군의 편제와 실태

Metadata Downloads
Alternative Title
Military Formation and Conditions of the Local Forces in the Jeju Region During Late Joseon Dynasty
Abstract
본고에서는 조선후기 제주 지방군제의 개편에 따른 제주지역 지방군의 편성과 그 실태를 파악하는 한편, 제주지역 지방군의 시기별 편제 양상을 살펴보았다. 또한 제주에 남아있는 1870년「대정군군병도안」의 지방군 편제와 그 특징을 고찰하는 한편,「호적중초」자료와 비교분석하여 지방군에 편성된 군병들의 직역 실태를 파악함으로써 조선후기 제주지역 지방군 편제의 한 단면을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예로부터 제주지역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빈번한 표류ㆍ표착을 통해 중국, 일본, 유구, 안남 등과 끊임없이 역사적 긴장관계를 맺어왔다. 또한 제주를 해상 근거지로 삼고자 하였던 왜구의 빈번한 침입에 늘 대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제주 해안에 빈번하게 출몰하면서 필요한 식량·재물을 확보하기 위해 약탈 혹은 방화를 일삼아 온 왜구를 격퇴하고자 제주민들은 그들 스스로 독자적인 방어체제를 구축하여 왔다고 보여진다.
즉, 조선시대에는 해안가에 설치된 38개의 연대와 먼 바닷가를 조망하며 왜구 등의 침입을 감시하고자 하였던 25개의 봉수, 명월진 등을 포함한 9개의 진성, 그리고 제주읍성과 대정·정의현성 등에 편제된 군병들을 주축으로 제주의 방어체제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민들로 하여금 제주지역 지방군을 편제하는 과정에서 남정은 군역을 과중하게 부담해야 했고, 이와 더불어 각종 세금과 부역을 부당하게 수탈당하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또한 일정한 조건을 갖춘 양인 남정은 의무적으로 군역에 종사해야 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남정들은 납속, 모칭 등의 방법으로 양반신분을 취득하여 군역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필자는 조선후기 제주지역 지방군의 편성과 그 실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 당시 제주도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각 군(軍)에 편성된 군병들의 직역을 밝힘으로써 조선후기 다양한 직역을 지닌 군병들이 어떠한 병종(兵種)에 소속되어 제주지역 지방군을 이루고 있었는지를 역사적 관점에서 논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로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한 조선후기 지방군의 변화 양상과 함께 제주지역 지방군의 시기별 분포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조선후기 지방의 군사제도는 각 거주지 중심의 방어 훈련을 기본으로 한 속오군(束伍軍)제도와 이러한 속오군 등의 지방군 훈련과 지휘를 담당하면서 지방군사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영장제도(營將制度)를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장이 설치되지 않았던 제주지역의 경우 제주목사가 육군과 수군을 통제하고, 지휘·감독하여 해안 일대에 왜구가 출몰하거나 이민족의 침입이 있을 경우 독자적으로 대처하면서 '독립적인 방어체계'를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제주지역은 군병을 편제하는 데 있어서 다른 지역에 비해 마병(馬兵)의 비율이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이는 예로부터 제주지역이 목장지대로써 말이 다른 곳에 비해 풍족하여 기병을 양성하기에 용이했던 것으로 사료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지역 지방군의 시기별 분포에 따라 헌종 13년(1847) 제주 군제개혁을 기점으로 마대와 속오군이 증설되는 한편 별아병이 창설되면서 지방 군사력이 증강되었고 또한 방어 체제의 변화를 가져왔다. 마대의 경우는 모두 14초로 이전보다 총 4초가 증편되었고, 속오군은 모두 60초로 이전에 비해 총 30초가 증편되었다. 그리고 별아병의 경우는 10초가 신설되었는데, 이 때 방영에서 모든 마대와 속오를 일괄 지휘·감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대정과 정의, 양 진(鎭)으로 군사 지휘·감독권이 이양되었다. 이러한 군제의 개혁은 지역 방어에 효율성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군사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효과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는 1847년 제주 군제개혁 이후 「탐영사례」와 같은 기록을 살펴보면, 제주지역 군병의 편성이 당시 군제개혁의 내용을 충실한 반영하고 유지한 결과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셋째 '군병도안' 자료를 활용하여 조선사회에서 군적이 갖는 의미와 '군병도안'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에 따라 특징을 살펴보았다. 또한 이와 더불어 '군병도안'에 편성된 군병들의 각 병종별 편제 실태를 살펴보았다. 군적(軍籍)이란 당시 군병들의 소속과 신원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자료로서 당시 지방군에 편제된 군병들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이처럼 제주에 남아 있는 자료 가운데 1870년(고종 7)에 작성된 '군병도안'에는 조선후기 제주지방의 주요 병종인 마대, 속오군, 아병, 성정군, 군수수솔 등의 편제 사항이 일목요연하게 기재되어 있는데 이들의 군액은 총 1,900명에 달하였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성정군, 마대, 속오군 등에 편제된 군병 등은 신역 외에 속오역을 겸역으로 지니고 있었던 반면 봉·연군에 편제된 군병은 원신역자로 편제되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군병들은 각 병종별로 대부분 '업무'와 '교생'에 해당하는 직역을 지니고 있는 반면 '군병도안' 내에서 직역 자체가 기재되지 않은 경우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특기는 사(射), 환도(還刀), 장(杖), 창(槍) 이 네 가지 종류에 해당하는데 성정군에 편성된 군병들은 대부분 '업무'와 '교생'직역자로서 '사' 또는 '환도'의 특기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곧 성정군에 편성된 군병은 신분적으로 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자들로서 활과 칼을 다루는 데 비교적 능숙했기 때문에 이들로 하여금 성정군에 편성하여 제주지역 방어에 주력하고자 한 것으로 보여진다.
넷째 1870년 '군병도안' 이 시기에 해당하는 '호적중초' 자료와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당시 군적에 기재된 군병들이 각 마을별 '호적중초'에는 어떠한 직역으로 기재되고 있는지 그 실태를 파악하였다. 군적에 기재된 1,900명의 군병 중 분석대상으로 삼은 대정현 12개 마을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된 군병은 총 970명이었고, 이 가운데에서도 12개 각 마을별 호적중초에서 그들 군병의 직역이 확인된 수는 598명으로 약 62%에 해당하였다. 이들은 가솔, 천총 등과 같은 군관 직역은 물론이고 유학, 유향별감, 품관 등 신분상으로는 양반층에 해당하는 직역을 지닌 군병들로서 각 병종별로 그 직역은 매우 다양하게 분포하였는데 이처럼 다른 지역에 비해 직역의 차등(差等)이 미약하였기 때문에 대부분 다양한 직역을 지닌 자들이 군역을 지니고 각 군에 고르게 편제되어 제주지역 지방군의 근간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조선후기에 일어난 임진왜란 등의 전쟁은 전반적으로 조선사회의 각 부분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군제에 있어서도 다양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정에서는 이러한 백성에게 부역과 군역을 부과함으로써 이들을 조직적으로 통치·지배하기 위해 각 군(軍)에 편제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조선후기 제주지역 지방군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속오군, 마대를 비롯한 각 병종들은 그 편성 따라 각각의 군사적인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군병도안' 내의 각 병종별로 편제된 군병들은 군관 직역을 비롯하여 유학류와 노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역을 지니고 당시 시대 상황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신분직역의 상향 이동을 꾀하였던 것이다. 즉 이러한 모록·모칭의 결과로 대부분의 하층민의 경우 비교적 낮은 계층이 담당했던 것으로 보여 지는 봉·연군 또는 방군 등에 편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직역을 살펴보면 보다 높은 상층의 직역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어느 한 시기의 특정 지역에 근거를 두고 지방 군제를 연구하는 데에는 그 지역의 정치·사회·경제적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 후에야 비로소 역사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후기 지방 군제는 각 지역에 근거를 두고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편성, 유지됨에 각 지역별로 군제 운영의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라는 특정한 지역의 군제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그 일차적인 사료라 할 수 있는 '군병도안'과 '호적중초' 자료를 활용하여 제주지역 지방군의 실태를 살펴보는데 있어 한계가 많았다. 이에 향후 자료를 보강하여 조선후기 제주지역의 지방 군제를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하며 역사적 상황의 변천에 따라 대응하고 군사적 역할을 수행해 나간 제주지역 지방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The paper aims to review the formation of the local forces in the Jeju region and the troop disposition, at different times, after the military reorganization took place during the period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e study also examines the local military formation and characteristics by reviewing one of the remaining Jeju's cultural assets, 'Daejeonggun Gunbyeongdoan', the military register of the Dajeong magistracy in 1870. A comparative analysis is performed between the data from the military register and another available historic record of census register of the time, 'Hojeokjungcho'. The study intends to revisit and show how the local military force was formed. A comparative analysis will provide a fresh point of view.
There was an independent defense system formed in Jeju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The region's military forces were under the command and control of the Jeju Magistrate. Later, when King Heonjong, in the 13th year of his reign (1847), declared a reorganization of the forces in the Jeju region, the mounted unit, 'Madae'; the local unit, 'Sogogun'; and the soldiers positioned at the office of the Magistrate, 'Beorabyeong' were newly added expanding the scale of the local military force. The reorganization also influenced and changed the defense system to add efficiency in the defense of the Jeju region, while it brought the effect of lessening the burden on the soldiers.
The 'Daejeong Gunbyeongdoan' military register made in Jeju in 1870 is a valuable document that clearly records the data on the soldiers, to include their military positions and identifications. From such important records, it is very significant to be able to find out how the local forces were formed and what conditions the forces were exposed facing. According to the register, the types of soldiers assigned to the local forces in Jeju were 'Madae' mounted unit, 'Sogogun' general local soldiers, 'Seongjeonggun' castle defending soldiers, 'Gunsususol' logistics, 'Bonggun' soldiers in charge of the beacon mounds, and 'Yeongun' smoke signal soldiers. The force totaled 1,900 soldiers.
As noticed, the 'Daejeong Gunbyeongdoan' military register was written in 1870 and the 'Hojeokjungcho' census register was made around the same time. It should be safe to assume that the two records are related. Accordingly, the records of the soldiers on the military register were compared with the ones in the census register to find out what kinds of occupations they had prior to military assignment. The 970 soldiers whose residents were from the 12 villages of the Daejeong magistrate, out of the total of 1,900 registered soldiers, are studied in this paper. Among the 970 soldiers, 598 or 62% of them had a confirmed occupation matching the census register of the 12 villages.
The type of the soldiers' occupations varied depending on the soldier's military position, such as, 'Gasol' border patrol special officer, 'Cheonjong' high commissioned military officer, to 'Yuhak' gentry of higher social status, 'Yuhyang-byeolgan' and 'Pumgwan' government officer positions. However, most of them were obliged to fulfill their duty of military service. There was no difference in this treatment between the different levels of occupations and social standings. They were the main manpower to form the local military forces in the Jeju region.
In conclusion, the study is conducted to review the formation of military ranks and positions, as well as, the surrounding conditions, by examining the dominating ranks of 'Sogogun', 'Madae', and 'A-byeong', as the local military organization in the Jeju region during the late period of Joseon. Further, the study on the military system of the special region of Jeju can be expected to give an important clue to recognize the historical uniqueness of the region, as differentiated from other areas, and to understand the aspects of the local military chang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uthor(s)
임승희
Issued Date
2010
Awarded Date
2010. 2
Type
Dissertation
URI
http://dcoll.jejunu.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4914
Alternative Author(s)
LIM, SEUNG HEE
Affiliation
제주대학교 대학원
Department
대학원 사학과
Advisor
김동전
Table Of Contents
Ⅰ. 머리말 1
Ⅱ. 제주 지방군의 편제와 시기별 분포 6
1. 조선후기 지방군과 제주지역 6
2. 제주지역 지방군의 시기별 분포 22
Ⅲ. 『대정군군병도안』의 지방군 실태 35
1. 『대정군군병도안』의 내용과 특징 35
2. 『대정군군병도안』의 지방군 편성 43
Ⅳ. 『호적중초』의 군병 직역과 『대정군군병도안』 50
1. 『호적중초』에 나타난 군병의 직역 실태 50
2. 『대정군군병도안』과 『호적중초』 자료의 비교분석 54
Ⅴ. 맺음말 69
참고문헌 73
Degree
Master
Publisher
제주대학교 대학원
Citation
임승희. (2010). 조선후기 제주지역 지방군의 편제와 실태
Appears in Collections:
General Graduate School > History
공개 및 라이선스
  • 공개 구분공개
파일 목록

Items in Repository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