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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초기 개신교 역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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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rnative Title
A Study on the History of Early Protestantism in Jeju
Abstract
본 연구는 지난 114년의 개신교 역사 가운데 1900년 무렵부터 이기풍 목사가 1차 사역을 마치고 제주를 떠나는 1915년과 그 이후 5년까지, 즉 개신교 초기 20년의 원형질의 역사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 제주 개신교의 역사는 한국 교회사라고 하는 거대 담론의 우산 아래 놓여있었다. 따라서 제주도에 선교사를 파송한 한국장로교회와 이기풍 목사를 비롯한 외부 전도인들의 활동은 크게 주목받았다. 반면, 제주도 현지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선교활동은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다. 본 논문은 초기 제주도 교회를 이끌었던 현지 교인들의 경험과 관계들을 좀 더 밀착하여 들여다봄으로써, 제주교회의 특징을 보다 입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즉 관찰의 대상을 제주 현지인 중심으로 설정함으로 기존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았던 접근 방식과는 다른,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로 본 연구에서는 제주 개신교의 초기 역사의 정착 과정에서 큰 역할을 감당한 이호리 신앙공동체의 김재원, 금성리 신앙공동체의 조봉호, 자발적으로 이기풍 선교사를 찾아가 세례를 받고 세화리 신앙공동체를 만든 부상규, 그리고 이기풍 선교사를 돕기 위해 육지에서 동행하여 선교사역에 최선을 다했던 이선광, 김홍련 전도인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이 땅의 토박이로서 조천교회와 성읍교회를 세우는데 자기 집을 팔아 기부한 천아나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법환교회 건축비를 5년간 기부한 강한준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도인들의 행적과 선교활동을 새롭게 발굴하여 소개하였다.
이들 초기 전도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당시 제주민들의 고단한 일상과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요동치는 제주교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역사란 의미 없는 사실만으로 나열된 무미건조한 존재가 아니라 마디마디가 독특한 의미의 고리들로 엮어진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제주도 기독교가 어떤 의미의 고리들로 엮어져 왔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적절한 선택이 될 것이다.
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오늘을 있게 한 ‘제주 교회의 처음 역사’와 신앙의 흐름을 연관시켜 초기 기독교인들의 행적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를 서술한 김기봉에 의하면, “아래로부터의 역사”란 소위 역사가들이 재구성하는 공식적인 역사에 가려진 보통사람들의 기록 내지는 그들의 집단 기억을 발굴해서 그들의 역사를 되찾아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 교회 초기의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그들의 행적과 역할을 소개하는데 역점을 두고자 한다.

이제 제주는 단순히 선교지라는 차원을 넘어 한국교회 안에 자리 잡아 가기 시작했다. 외세의 침략 앞에 민족주의적이고 자주적인 저항을 계속해온 제주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면서 다시 한번 거족적인 민족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제주 기독교는 한국교회 안에 불고 있던 민족운동에 동참한 것이다. 그것은 강제적인 참여가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였으며, 자원하는 뜻에서의 동참이었다.
이것은 제주라는 선교지로서의 특수지역이 이제 한국교회의 일원으로 대등하고 동등한 위치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피할 수 없는 단계였다. 그런 의미에서 개신교가 전파된 1908년부터 1920년까지는 제주교회가 정착과 도약을 하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기간이었다.
이제 제주선교 100년에 대한 심도 있고 체계적인 역사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 제주선교 100년은 곧 한국선교 100년을 의미한다. 지나간 114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향후 100년의 노정(路程)을 계획하는 일이야말로 중요한 교회의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향후 전개되는 제주 개신교 역사 해석의 주체는 선교사나 중앙의 시각이 아닌 복음을 받아들인 제주 현지인의 눈높이에서 해석하고 서술되어야 한다. 선교의 역사는 선교활동과 관련 있는 수많은 당사자의 소리를 함께 듣고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mong the 114 years of Protestant history,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history of protoplasm from around 1900 until 1915 when Pastor Lee Ki-pung left Jeju after completing his first ministry, and five years after that, that is, the early 20 years of Protestantism.
Until now, the history of Jeju Protestantism has been under the umbrella of a huge discourse called the Korean church. Therefore, the activities of outside missionaries, including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and Pastor Lee Ki-pung, who sent missionaries to Jeju Island, received great attention. On the other hand, missionary activities in which local residents of Jeju Island participated were not very illuminated.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Jeju Church in a more three-dimensional manner by looking more closely at the experiences and relationships of local church members who led the early Jeju Church. In other words, by setting the subject of observation centered on Jeju locals, we intend to draw a conclusion that is different from the existing approach viewed from the perspective of outsiders.
For this reason, this study introduces Kim Jae-won of the Lee Ho-ri Faith Community, Cho Bong-ho of Geumseong-ri Faith Community, Bu Sang-gyu, who voluntarily visited and created Sehwari Faith Community, and Lee Sun-kwang and Kim Hong-ryeon, who did their best on land to help Lee Gi-pung. He also discovered and introduced the deeds and missionary activities of missionaries who were not well known until now, such as Chen An-na, who donated his house to build Jocheon Church and Seongeup Church, and Kang Han-jun, who worked as a worker at a sugarcane farm in Hawaii for five years.
If you follow the footsteps of these early evangelists, you will be able to see the Jeju Church fluctuating in the harsh daily life of the Jeju people at that time and the rapidly changing domestic and international situation.
In fact, history is not a dull being listed only as meaningless facts, but a living organism whose joints are woven with unique rings of meaning. In that sense, it would be a very appropriate choice for us living in the 21st century to find out what meaningful rings Jeju Christianity today have been woven into.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activities of early Christians by linking the "first history of the Jeju Church" that made today with the flow of faith.
According to Kim Ki-bong, who describes "Beyond What History Is," "History from the Bottom" refers to discovering the records of ordinary people or their collective memories hidden in the official history reconstructed by historians and restoring their history.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focus on actively discovering characters in the early days of the Jeju Church, which have not been well known so far, and introducing their deeds and roles.
Now, Jeju has begun to move beyond just being a missionary site and establish itself in the Korean church. Jeju, which has continued to resist nationalistic and independent in the face of foreign invasion, once again participated in the giant national movement with the March 1st Movement in 1919. Jeju Christianity joined the national movement that was blowing in the Korean church. It was voluntary participation, not compulsory participation, and participation in the sense of volunteering.
This was an inevitable step in the process of developing a special area called Jeju into an equal and equal position as a member of the Korean church. In that sense, from 1908 to 1920, when Protestantism was spread, it was a precious and meaningful period when the Jeju Church settled and took a leap forward.
Now, in-depth and systematic history organization work on the 100 years of Jeju missionary work is needed. 100 years of Jeju missionary work means 100 years of Korean missionary work. Organizing the past 114 years of history and planning the next 100 years of road is an important church task. Therefore, the subject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history of Jeju Protestantism in the future should be interpreted and described at the level of Jeju locals who accepted the gospel, not from the perspective of the missionary or the center. This is because the history of missionary work requires listening to and recording the voices of numerous parties related to missionary activities together.
Author(s)
이재호
Issued Date
2022
Awarded Date
2022-08
Type
Dissertation
URI
https://dcoll.jejunu.ac.kr/common/orgView/000000010794
Alternative Author(s)
Lee, Jae Ho
Affiliation
제주대학교 대학원
Department
대학원 한국학협동과정
Advisor
양정필
Table Of Contents
Ⅰ. 서 론 1
1. 문제 제기와 연구목적 1
2. 선행연구사 검토 3
3. 연구 방법 11
Ⅱ. 평양대부흥운동과 제주선교의 결정 15
Ⅲ. 자주적 신앙공동체와 이기풍 목사의 선교활동 28
1. 자주적 신앙공동체의 등장 28
2. 이기풍 목사의 입도와 선교활동 44
3. 윤식명 목사의 산남지역 선교활동 82
Ⅳ. 제주교회의 설립과 확산 89
1. 산북지방(성내금성삼양한림교회) 91
2. 산남지방(모슬포용수고산법환교회) 107
3. 정의(동)지방(성읍조천세화교회) 121
Ⅴ. 결 론 137
Degree
Master
Publisher
제주대학교 대학원
Appears in Collections:
Interdisciplinary Programs > Interdisciplinary Postgraduate Program in Koreanology
Authorize & License
  • AuthorizeOpen
  • Embargo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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